다섯 개의 캠퍼스, 다섯 개의 종목

서울대학교에 캠퍼스가 몇 곳이냐고 물으면 답이 갈립니다. 대개 관악을 먼저 떠올리고, 병원을 생각하는 분은 연건을 더하고, 농과대학을 기억하는 분은 수원을 말합니다. 평창과 시흥까지 세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답은 다섯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다섯을 한 화면에 나란히 놓고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관악은 더 이상 넓어지지 않습니다. 한쪽은 산이고 다른 쪽은 개발이 제한된 녹지입니다. 실험 공간을 늘려 달라는 요청 앞에서 학장이 할 수 있는 답은 대개 정해져 있었습니다. 쉽게 바뀔 조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학이 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납니다.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데 임무만 늘어납니다.
학부 교육의 중심은 관악에 남습니다. 이 글은 무엇을 어디로 옮길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다섯 곳을 각각 무엇에 쓸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관악은 밀도의 자산입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촘촘히 모여 있고, 전공이 다른 사람들이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칩니다. 학부 교육과 기초학문의 중심이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 밀도 때문입니다. 밀도는 넓힌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연건은 임상의 자산입니다. 십만 제곱미터 남짓한 좁은 땅에 마흔 개가 넘는 건물이 서 있고, 그 안에서 진료와 교육과 연구가 같은 시간에 일어납니다. 환자를 보는 일과 의사를 기르는 일과 논문을 쓰는 일이 한 걸음 거리에 있다는 것, 이것은 관악의 밀도와는 또 다른 종류의 자산입니다. 다만 그곳도 이미 포화 상태이고, 미래의 의학 교육 환경을 다시 설계하려는 논의가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평창은 현장의 자산입니다. 278만 제곱미터의 땅에 목장과 초지와 온실이 있고, 기후와 식량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조건 속에서 다루어집니다. 그동안 우리는 평창을 주로 사업 규모로만 이야기해 왔습니다. 척도를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시흥은 규모의 자산입니다. 넓은 부지와 큰 시설이 있어야 가능한 일, 산업이 대학과 한자리에서 만나는 구조는 관악에서는 물리적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관악이 못 하는 일을 대신하는 곳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종목을 뛰는 곳입니다.
그리고 수원이 있습니다. 2003년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으로 통합되면서 그 캠퍼스는 새로운 쓸모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무엇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이 스무 해 넘게 열려 있는 셈입니다. 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술대학과 농업생명과학대학과 중앙도서관이 그곳을 문화예술의 플랫폼으로 만들려는 일을 해 왔습니다. 다만 그 시도가 대학 전체의 계획으로 올라오지는 못했습니다. 그 사이 경기도가 그 공간의 상당 부분을 문화 공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뼈아픕니다. 이것은 어느 단과대학이 혼자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대학 전체가 답을 내놓아야 할 일이었고, 그 답이 나오지 않은 채로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원래 오래 걸립니다. 해외의 연구단지들도 대학이 먼저 들어가 기업이 오기까지 몇 해, 성숙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지금 물어야 할 것은 몇 년 안에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아니라, 20년 뒤를 기준으로 지금 무엇을 정해 두어야 하는가입니다.
서울대학교가 받는 가장 무거운 사회적 질문은 수도권에 자원이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관악과 연건은 서울이고 수원과 시흥은 수도권입니다. 그 질문에 답이 되는 곳은 평창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평창을 남는 땅이 아니라 하나의 종목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방에 캠퍼스를 하나 더 두는 일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를 그 현장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