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연구, 3년의 재원

지난 글에서 저는 연구가 10년의 축적을 요구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10년을 지탱하는 재원은 대개 3년입니다.
3년짜리 과제가 끝나갈 무렵이면 연구자는 결과를 정리하는 대신 다음 제안서를 씁니다. 제안서를 쓰고, 중간보고서를 쓰고, 정산서를 씁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다음 과제를 준비할 때가 됩니다. 연구자에게 가장 귀한 자원이 시간인데, 그 시간의 적지 않은 몫이 연구가 아니라 연구를 계속할 자격을 증명하는 데 쓰입니다.
이것은 연구자 개인의 시간 관리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에 안정적인 재원이 없어서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 고등교육의 정부 재원은 국내총생산 대비 0.6% 수준으로 OECD 평균 0.9%에 미치지 못합니다. 등록금은 2025학년도부터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인상이 재개되었지만 국공립대학은 오랫동안 사실상 묶여 있습니다. 등록금을 올려 그 자리를 메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두 재원이 모두 크게 늘기 어려운 상태에서 남는 길은 해마다 경쟁 과제에 응모하는 것뿐이고, 경쟁 과제는 본래 3년의 시계로 움직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재정을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봅니다. 그 구조는 세 개의 기둥 위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입니다.
첫째는 대학 자신의 자산입니다. 서울대학교는 관악 밖에도 적지 않은 토지와 시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산 하나하나가 대학의 무엇을 맡고 있는지를 물으면 답이 잘 나오지 않고, 그래서 대체로 관리 비용으로만 남습니다. 땅을 팔거나 개발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산에 제 역할이 정해져야 그 자산이 대학을 지탱하는 방식도 정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으며, 저는 구체적인 수치를 지금 말씀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가능성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 것과, 20년을 내다보고 설계를 시작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캠퍼스와 함께 다루겠습니다.
둘째는 기부입니다. 이 시리즈의 첫 글에서 저는 기부자의 요구에 대학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자율성을 지키면서 신뢰를 얻는 일이 곧 재원을 얻는 일이라는 것이 그때의 결론이었습니다. 기부는 재정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두 번째 기둥입니다.
셋째가 국가 재원입니다. 저는 지난달 교육교부금 공개토론회에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제정을 제안했습니다. 초·중등 교육에 적용되는 것처럼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고등교육 재원으로 연동하자는 것입니다. 한시적인 특별회계로는 어느 대학도 10년 뒤를 내다보는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서울대학교가 그 재원의 큰 몫을 받게 되리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 고등교육 재정은 지역의 거점 대학을 향해 흐르고 있고, 저는 그 방향 자체가 국가적으로 타당하다고 봅니다. 초·중등 교육의 몫을 옮겨오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같은 원인이 한쪽에는 여유를 남기고 다른 쪽에는 고갈을 가져왔고, 그 불균형을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다시 보자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법을 제안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고등교육 전체의 바닥이 꺼지면 그 위에 선 어느 대학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몫을 늘려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판 자체를 다시 놓자는 제안입니다.
세 기둥이 서고 나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교직원과 연구자의 처우입니다. 재원의 구조가 서기 전에 하는 처우 이야기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약속이 아니라 부담의 이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순서는 반대여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