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벽을 허물다 — NEXST Lab, 초학제 연구 거점의 설계

숫자만 보면 단순한 시설 확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NEXST Lab의 본질은 규모가 아니라 설계 원리에 있습니다. 이 공간의 핵심 전제는 하나입니다. 전공의 경계가 연구의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한국 대학 연구의 오랜 구조적 문제는 전공 사일로입니다. 물리학자는 물리학과에, 화학자는 화학과에, 생물학자는 생물학과에 각자의 실험실을 갖습니다. 개별 연구의 깊이는 높아지지만, 경계를 넘어야 비로소 보이는 질문들은 놓칩니다. 세계 학술계가 지금 가장 뜨겁게 탐구하는 영역들 — 예를 들어, 합성생물학, 뇌-신경과학, 양자물질·소재·에너지 융합, AI for Science — 은 하나의 전공 안에 담기지 않습니다. 추격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선도자가 되려면, 아무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경계 지점에서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NEXST Lab의 청사진을 설계하면서 참조한 모델은 미국의 연방자금지원연구개발센터(FFRDC)였습니다. 특정 기관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하여 국가 전략적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이 거버넌스 모델은 연구자가 부처의 지침이나 단기 성과 지표에 묶이지 않고 10년, 20년의 지평에서 근본 문제를 파고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NEXST Lab은 이 원리를 서울대학교 캠퍼스 안으로 가져오려는 시도입니다.
1만 제곱미터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전공의 교수 100명이 실험실의 벽 없이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통합이 아닙니다. 물리학자와 생명과학자가 같은 복도에서 우연히 대화하고, 그 대화에서 어느 쪽도 혼자였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질문이 탄생하는 것. 세계 최고 수준의 융합 연구소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이 ’우연한 충돌’이 설계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